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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정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의 생명력과 존재감을 과학과 수학이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명 방식을 차용하여 작품으로 드러낸다. 수학과 순수예술을 접목하는 신선한 기법을 이용하여 새로운 예술 형태를 제시하는 활발한 젊은 작가이다.



<가방해부도(Anatomical Chart of Bag)>, 2014 일상의 이야기를 ‘수학 공식화’하는 작업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8년 전쯤 학교에서 문득 ‘나를 자로 재듯 도면에 그려 나가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수학이나 과학, 건축 도면에 쓰이는 기호를 찾아 자화상을 그려 보았어요. 그러다 겉모습만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도식화된 기호를 통해 표현해 보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일상 속 이야기를 기호를 통해 공식화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작가님 작품은 아주 개인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관람자가 쉽게 공감할 만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작품 소재를 고르시나요?
제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는 소소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저에게는 특별하고 소중한 것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개인적으로 소중하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특히 ‘가족’이나 ‘연인’과의 추억을 많이 다루시는데, 대중이 흔히 생각하는 ‘사회에서 고립된 고독한 아티스트’ 이미지가 아닌, ‘가족 중심적’, ’관계 지향적’인 성격이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아티스트든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이 가는 것이 곧 작업으로 이어지는데 저는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자주 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흥미와 재미를 느껴요. 그러다 보니 작품도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과학을 만난 안민정 작가의 가방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이번 가방방정식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방이 사람과 비슷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어요. 전시 작품 중 <가방해부도>는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가방의 기능에 인간의 몸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에서 서로를 해부해 오버랩한 것입니다.예를 들어, 사람과 가방을 이어 주는 가방끈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팔과 같고, 가방의 입구(지퍼)는 사람의 입(치아)과 닮았어요. 또 이동의 편리를 위한 부품인 캐리어의 바퀴는 사람의 다리와 같은 기능을 해요. 나아가 가방 속에 물건을 담는 것은 마치 마음속에 생각과 감정을 담은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가방의 이미지와 사람의 이미지를 매칭하면서 작업을 진행해 나갔어요. 가방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을 통해 <Bag is Science: 가방방정식>에서 전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지요? ‘가방=사람’이지요. 수학에서 등호는 ‘같다’라는 뜻이잖아요. 단순하지만 가방은 그 사람의 이야기와 추억을 ‘담은’, 혹은 그 사람의 성향과 스타일을 ‘닮은’ 매우 개인적인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가방은 물건을 넣어 들고 다니는 도구 그 이상의 것이라는 말이죠. 결국 사람이 가방이 되고 가방이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가방에 얽힌 추억을 어떻게 공식화하시나요?
‘추억’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측량할 수도 없어요. 이번 전시작 중 <서로를 담다>는 데이트 후의 가방 무게로 가방에 담긴 남녀의 이야기를 표현했어요. 남자의 가방에는 여자친구가 챙겨 준 호두파이와 당장 내일 아침에 먹을 식빵, 그리고 남자 혼자서는 고르기 힘든 남성용 폼클렌징이 들어있는데 여기서 물체의 무게만이 아니라 ‘든든함’과 ‘안정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게가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어요. 또한 원래 들어 있던 전공서와 투자입문서에는 미래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들어 있어요. 여자의 가방은 오늘 본 영화표 두 장과 맛집 쿠폰, 단골집 커피 도장 잉크로 인해 데이트 후 가방의 무게가 아주 미세하게 늘어났는데 거기엔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담겨 있어요. 예를 들어 남자친구가 그녀를 위해 준비한 깜짝 영화표는 며칠 후면 버릴 것이지만 남자친구의 애정이 들어 있기에 가방에 넣어 둔 것이고, 단골집 커피 쿠폰의 도장 잉크에는 다음번에 마실 무료 커피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귀찮게 그런 것을 왜 모으느냐, 차라리 쇼핑을 줄이겠다는 남자친구의 잔소리도 들어 있어요. 또한 새로 발견한 맛집 쿠폰은 다음 데이트에 대한 ‘계획’과 ‘설렘’이 들어 있지요. 가방에 담긴 이야기를 공식화한다는 것은 이렇게 단순히 가방 속 물건만이 아니라 함께 담긴 이야기들이 또 하나의 단서가 되어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작가님의 가방에는 무엇을 담고 싶나요?
제 가방에는 필요한 물건만 담겨 있으면 좋겠어요. 무거운 걸 싫어하는데, 특히 비가 오지 않는 날 가방에서 우산을 발견하면 짜증이 나곤 해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 전에 바닷가에 놀러 가서 이게 다 추억이라며 조개껍데기를 주워 가방에 담아 온 적이 있어요. 짐이 될 걸 알면서도 가방에 담아 왔는데 이럴 때 보면 가볍고 실용적인 것만 챙기는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제 가방에는 꼭 필요한 물건과 함께 그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만한 물건들이 담겨 있으면 좋겠어요. 가방에 얽힌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나요? 아주 오래전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에 그림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지하철을 탔다가 선반에 두고 내린 적이 있어요. 결국 못 찾았는데 그 후로는 가방을 지하철 선반에 두지 않아요. 꼭 선반에 두어야 할 경우가 있었는데 또 잃어버릴까 봐 고민하다가 마침 가방 안에 있는 실로 가방에 묶고 그 실을 제 손목에 칭칭 감았어요.


안민정 작가에게 가방이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방에 생각보다 더 많은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신체의 일부처럼 늘 나와 가까운 곳에 있고 그동안 ‘나’를 담아 온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4월 말부터 1년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다양한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제 작품을 통해 누구나 누릴 수 있고 상대적이지 않은 개인의 이야기들을 소중하고 특별하게 간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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